"가구 팔지만, 남는 건 디자인"
세계 3大 디자인상 받은 퍼시스그룹 양영일 부회장
고집스레 디자인 경영 지켜… 가구는 삶 집약된 연극무대
"가구를 팔지만 결국 남는 건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열악한 환경에서 디자인 경영을 고수했다." 11일 서울 논현동 '일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양영일(64) 퍼시스그룹 부회장은 "과거 해외에선 한국 가구로 명함도 못 내밀었다"며 "이젠 한국 가구도 가전처럼 디자인으로 해외에 진출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양 부회장은 CDO(Chief Design Officer·최고디자인책임자)로 퍼시스그룹 계열사인 퍼시스·일룸·시디즈에서 생산되는 모든 가구의 디자인 총책임자다.
- 서울 논현동 일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양영일 퍼시스그룹 부회장이 얼마 전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은‘에가’의 자를 만지고 있다. /퍼시스 제공
그는 최근 업계의 가장 큰 이슈인 스웨덴계 가구 유통회사 IKEA(이케아)의 국내 진출에 대해서도 "우리 회사만의 디자인 오리지널리티(고유성)를 갖고 이케아가 조장하는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반(反)환경적인 가구문화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업체들이 디자인을 아웃소싱하는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디자인까지 주문하는 생산방식)'을 통해 유통회사로 변신하는 상황에서 퍼시스가 자체 디자인을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가구업계의 디자인 베끼기 관행에 대해 양 부회장은 "과거 선진국의 디자인을 '참고'한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덧붙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2년 전 사무용 가구를 출시하자마자 잡지를 보게 됐는데 퍼시스 제품인 줄 알고 한참 봤더니 다른 회사가 그 사이 복제한 거였다. 유럽에선 디자인을 베끼면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분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부회장은 "집에서 쓰는 가구 디자인은 그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집적된 형태"라며 "수입산보다 한국 가구의 디자인이 한국인의 생활습관에 더 맞다"고 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인 그는 "가구를 건축적 관점에서 보려 한다"며 "가구 하나하나를 단품으로 디자인하기보다는 실내 환경을 시스템적으로 만드는 가구를 디자인하려 한다"고 했다. 양 부회장은 신구·한진희·김민기 등과 함께 경기고 출신 사회인 극단 '화동연우회'에서 활동하며 연극 무대를 14차례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에게 가구란? "가구는 무대다. 삶의 희로애락이 집약된 연극 무대처럼 삶이라는 연극이 펼쳐지는 '배경'이다."
조선일보